퍼다나른 읽을 거리

한명숙 전 총리 조사(弔辭) 전문

by 진환 posted May 29, 2009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대통령님,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떠안은 시대의 고역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새벽빛 선연한 그 외로운 길 홀로 가셨습니까?

유난히 푸르던 오월의 그날, '원칙과 상식' '개혁과 통합'의 한길을 달려온 님이 가시던 날, 우리들의 갈망도 갈 곳을 잃었습니다.서러운 통곡과 목 메인 절규만이 남았습니다.

어린 시절 대통령님은 봉화산에서 꿈을 키우셨습니다. 떨쳐내지 않으면 숨이 막힐 듯한 가난을 딛고 남다른 집념과 총명한 지혜로 불가능할 것 같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님은 꿈을 이루기 위해 좌절과 시련을 온몸으로 사랑했습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힘차게 세상에 도전했고, 꿈을 이룰 때마다 더욱 큰 겸손으로 세상을 만났습니다. 한없이 여린 마음씨와 차돌 같은 양심이 혹독한 강압의 시대에 인권변호사로 이끌었습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와 정의를 향한 열정은 6월의 민주투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삶을 살아온 님에게 '청문회 스타'라는 명예는 어쩌면 시대의 운명이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3당 합당을 홀로 반대했던 이 한마디! 거기에 '원칙과 상식'의 정치가 있었고 '개혁과 통합'의 정치는 시작되었습니다.

'원칙과 상식'을 지킨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거듭된 낙선으로 풍찬노숙의 야인 신세였지만 님은 한 순간도 편한 길, 쉬운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노사모' 그리고 '희망돼지저금통'. 그것은 분명 '바보 노무현'이 만들어낸 정치혁명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은 언제나 시대를 한 발이 아닌 두세 발을 앞서 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영악할 뿐 이었습니다.

수많은 왜곡과 음해들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어렵다고 돌아가지 않았고 급하다고 건너뛰지 않았습니다. 항상 멀리 보며 묵묵하게 역사의 길을 가셨습니다.

반칙과 특권에 젖은 이 땅의 권력문화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화해와 통합의 미래를 위해 국가공권력으로 희생된 국민들의 한을 풀고 역사 앞에 사과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님이 대통령으로 계시는 동안, 대한민국에선 분명 국민이 대통령이었습니다.
동반성장,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으로 더불어 잘사는 따뜻한 사회라는 큰 꿈의 씨앗들을 뿌려놓았습니다.

흔들림 없는 경제정책으로 주가 2천, 외환보유고 2,500억 달러, 무역 6천억 달러,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군사 분계선을 걸어 넘어 한반도 평화를 한 차원 높였고, 균형외교로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해 냈습니다.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쓰는 세계 첫 대통령으로 이 나라를 인터넷 강국, 지식정보화시대의 세계 속 리더국가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이 땅에 창의와 표현, 상상력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고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한류가 넘치는 문화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대통령님이 떠난 지금에 와서야 님이 재임했던 5년을 돌아보는 것이 왜 이리도 새삼 행복한 것일까요.

열다섯 달 전, 청와대를 떠난 님은 작지만 새로운 꿈을 꾸셨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잘사는 농촌사회를 만드는 한 사람의 농민,'진보의 미래'를 개척하는 깨어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 되겠다는 소중한 소망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봉하마을을 찾는 아이들의 초롱한 눈을 보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뇌하고 또 고뇌했습니다.

그러나 모진 세월과 험한 시절은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룰 기회마저 허용치 않았습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한없이 엄격하고 강인했지만 주변의 아픔에 대해선 속절없이 약했던 님.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글을 접하고서도 님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의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그래도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의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지막 꿈 만큼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입니까? 세상이 이런일이 있습니까? 세상은 '인간 노무현'으로 살아갈 마지막 기회조차도 빼앗고 말았습니다.

님은 남기신 마지막 글에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최근 써놓으신 글에서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실패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남아 있는 저희들을 더욱 슬프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대통령님.
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님의 말씀처럼 실패라 하더라도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습니다. 그래서 님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님. 생전에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분열로 반목하고 있는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끄시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민족간의 갈등을 평화로 이끌어주십시오. 그리고 쓰러져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금 꽃피우게 해주십시오.

이제 우리는 대통령님을 떠나보냅니다. 대통령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 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 하시는 일이 없기를, 더는 혼자 그 무거운 짐 안고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빕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을 놓아드리는 것으로 저희들의 속죄를 대신하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가시는 길, 이승에서의 모든 것을 잊으시고, 저 높은 하늘로 훨훨 날아가십시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편안히 가십시오.
2009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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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낭독한 조사는 '노무현의 필사(筆士)'로 불리는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작품인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정확하게 글로 옮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참모로, 청와대 재직 시절 대통령의 비공식 독대에도 배석해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 역할도 했다.

이날 조사에서 심금을 울린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라는 애절한 호소는 '대통령 노무현'의 시작과 마지막을 지켜본 그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윤 전 대변인이 집권 마지막해인 2007년 3월 건강을 들어 청와대를 떠나고 난 뒤에도 매주 관저로 부를 정도로 각별하게 아꼈고, 퇴임 후에도 봉하마을로 데려가 참여정부 기록정리 작업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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