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곁들인 일기

착한 남편놀이? 이제 그런거 안해!

by 진환 posted Jun 25, 2009

일년에 네 번, 영실이는 힘들다. 시험문제를 출제하느라.
이 기간에는 영실이도 영실이지만 나도 힘들다.
적어도 '나'를 비롯한 집안일로 힘들까봐 신경 써주느라.

이번 기말고사 출제기간에는 영실이의 슬럼프(?)도 함께 찾아와 좀더 힘들었다.

화창했던 봄날에, 화사히 피어보지 못하고, 마음껏 즐겨보지 못했던 탓일까...
초여름 들어서면서 영실이는 내내 기력이 없어보이고, 애써 억지 웃음을 지어보이는것 같아,
그를 보는 내 마음도 속상했다.

한달여전쯤 들었던 "화사해 보이지 않아서 속상해" 라는 한마디가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제 갓 서른의 문턱을 밟아선 우리네 나이대에 흔히들 겪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왠지 더 화사하게 피어나도록 돕지못한 내탓도 있는것 같아 측은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으로 복잡했다.


[착한 남편놀이 '09 여름시즌편] 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ROUND 1 

우선은 작은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같이 일하는 윤선이의 조언을 구했다.

역시 같은 여자라 그런지 왠지 나보다 영실이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는듯 도와주었다.
선택된 아이템은 비비안의 예쁘고 화사한 속옷과, 샤워후 기분을 상쾌히 해주는 엘리자베스아덴의 바디크림.

집에 가는길에 회사버스 대신 전철을 타고, 수원역에 내려 혼자 백화점 쇼핑을 했다.
여성속옷 매장과, 여성화장품 매장을 칙칙하게 차려입고 시꺼먼 백팩을 둘러메고 잘도 누비고 다녔다. ㅡㅡ;

집에 도착해서는 영실이가 오기전에 세팅에 들어갔다.
이렇게도 놓아보고, 저렇게도 놓아보고, 결국엔 우리가 좋아하는 스탠드 조명빨 잘 받도록,
침대에 단정히 놓아두고는 마음을 담아 짧은 카드를 남긴후 방문을 닫아뒀다.

문을 열면서 내뱉는 "어머~어~" 하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


그러나,,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룻밤정도?


ROUND 2 

결혼 후 초기에는 내가 영실이 아침을 준비해줬었다.
내가 늘 먼저 출근하는터라, 집을 나서기 전에 슈퍼에 파는 죽을 데워서 간단한 아침거리를 준비해두곤 했었다.

하지만 어찌어찌하다보니 계속 하기 힘들었고,, 스스륵 끊어졌다 ^^

그런데, 얼마전 영실이가 그랬다. 

"처음엔 아침도 챙겨주더니, 너무 빨리 끊어졌어."

헉~!!! 결혼 안한 총각들, 똑똑히 봐두라.
요즘 부인님들께는 아침밥 얻어먹고 다니는거 바라기 전에, 아침밥 안차려 준다고 투덜대지만 말아주세요~ 바래야할거다.

어쨌거나, 그래서 아침을 차려주기엔 내 아침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퇴근길에 토마토를 5,000원 어치 사와서 아침마다 갈아주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한 일주일쯤 한 거 같다.


ROUND 3 

지난 주말엔 날도 덥고, 입맛도 없으니 매운맛으로 혈기(?)를 되살려 보고자 떡볶이를 만들어줬다.
쉬운 요리지만 떡볶이는 처음 만들어봤다. 인터넷에서 대충- 찾아서 대충- 뚝딱뚝딱 만들었다.


맛은 뭐 비교적 ^^ 괜찮았었는데, 허나 이 약발 역시 얼마가지 않았다.


ROUND 4 

그래서 이번엔 "깜짝 여행"을 계획했다.
요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신 부모님을 두고, 둘만 놀러가려니 마음에 걸리는 바도 컸지만,
우선은 우리 와이프부터 살려놓고 보자는 마음으로 인테넷을 뒤적였다.

선택된 아이템은 만리포해수욕장, 동화마을 펜션 그리고 덕산스파캐슬로 이어지는 1박 2일 코스.
사무실에서 일하다 말고, 인터넷으로 표를 사고, 펜션에 문의를 하고, 예약을 하고, 입금도 하고.

2달 전 야심차게 시작한 스터디를 거의 빠진적 없이 열심히 했지만,
주말마다 집을 비우면서 들었던 미안한 마음도 있었던터라,
시험이 이제 겨우 3주 남았지만 과감히 스터디를 째기로 했다.

요건 이번 주말에 갈거다 ^^


ROUND 5 

예전에는 문제출제도 도와주기도 했지만, 이제 졸업한지 언 3년이 넘은터라 조금 버겁다.
그래서 최근에는 문제에 들어가는 삽화 그리는 일을 도와준다.
과목 특성상 삽화가 들어가는 문제가 엄청 많다. 

영실이에게는 '먹기' 가 가장 중요한 문제지만, 난 '잠자기' 가 가장 중요하다.
내 삶의 활력소는 '먹기'가 아니라 '잠자기'에서 나오니까, 난 의무감에서 일찍 잔다.
그래야 내가 그 다음날을 즐겁게, 보람있게 보낼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그 좋아하는 잠을 포기하고, 내 공부도 포기하고, 옆에서 삽화그리기를 도와줬다.
저녁부터 늦게까지. (뭐, 더 도와주지 못하고 먼저 잔건 쫌 미안 ^^)


이 외에도 식사준비, 설겆이 등등은 되도록이면 먼저 내가 챙기려 노력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설겆이가 거리가 있는지부터 살폈으니까 노력할만큼 한거다.


그런데!!!!

어제 비로소 문제출제가 무사히 끝났다.

내가 긴장이 풀렸던지 오늘 아침 늦잠을 자버렸다.
PT 자격 시험이 있는 날이라 정장을 준비해입고 나가야했기에 평소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릴텐데, 큰일이었다.

다행히 어제저녁 셔츠와 바지를 미리 다려두어서 한결 다행이긴 했지만,
워낙 버스시간이 아슬아슬해서 이리저리 혼장 방방 뛰었다.


분명히 늦었다고 울상짓는 멘트를 한방~ 날렸음에도 영실씨, 쿨쿨- 잘 주무신다. Zzzzzzz

집을 나서면서 볼멘소리로 "신랑이 늦었다는데 눈도 안떠보냐!" 하고 퉁- 내뱉었더니,

"내가 도와줄 것도 없는데뭘-" 이란다.


순간 기분이 싹! 상했다.

왜 없어?

마실 물한잔 준비해줘도 좋고, 세수를 하는동안 양말을 꺼내줘도 좋고, 
깜빡하고 놓고가서 다시 가지러 들어온 자켓을 챙겨줬어도 좋고, 구두를 챙겨줬어도 좋고, 왜 없어?
얼마나 바빴으면 양치도 못하고 나가는 신랑한테....

허겁지겁 뛰어서 출근버스를 탔는데, 너무너무 서운한거다.
난 배려하고 또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그동안 참 애썼는데, 갑자기 내가 이집의 식모 밖에 안되나.. 하는
어이없는 쓸쓸한 생각이 들어서 뚱한 문자메일 하나 날리고는 멍하니 차창밖만 봤다.

그러고는 하루종일 씩씩거리다 이 억울한 마음을 글로써야겠다~! 생각하고 마구 타이핑 질 중이다.
오늘 들어오기만 해봐, 나 파업이야!!!

이제 착한 남편놀이? 그런거 안할거야!!!



?
  • ?
    허봉 2009.07.01 09:26

    나 결혼 안할래 ㅡㅡㅋ

  • ?
    진환 2009.07.01 12:46

    현명해, 현명해 ㅋㅋㅋ
    이거 영실여사 보면 안되는데 ㅋㅋㅋ

  • ?
    영실 2009.07.01 17:04
    봤는데 이를 어쩌나...
  • ?
    상미 2009.07.01 22:26
    여기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안되는건 또 모라니 ㅋㅋㅋ
  • ?
    진환 2009.07.02 13:22
    그러게.. 어제 몇 대 맞았어 ㅠ.ㅠ
  • ?
    진환 2009.07.02 13:22
    근데,, 다들 살아있구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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