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다나른 읽을 거리

98년, 김난도 교수님의 글

by 진환 posted Feb 20, 2008
많은 우리 학생들이 전공을 불문하고 사법시험을 비롯한 각종 고시에 응시하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고시에 도움이 되는 과목의 강의실은 학생들로 넘치고 도서관은 법전과 문제집으로 가득차는 반면, 학우들의 학교생활은 황폐화하고 전공강의는 공동화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매우 귀에 익다. 우리 학생들이 그토록 고시에 매달리는 이유에 관하여 "서울대학생들이 신분상승의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빈정거리는 이도 있지만, 나는 그러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학생들과 함께 생화하며 내가 읽은 것은 신분상승의 열망보다는 '불안'과 '조급'이었다.

우리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의 근원은 스물 몇의 여느 젊은이들이 가지는 그것보다 궤적이 길다. '서울대 진학'을 유일한 목표로 청소년기의 모든 정열을 소진한 우리 학생들에게 서울대 합격은 아마도 중고교생활을 청산하는 멋진 복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만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소박했던 고교시절의 소망과는 달리, 졸업이 가까워옴에 따라 문제의 해결은 커녕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현실이 그 복음이 있던 자리를 대신할 때 즈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장래에의 불안이 그대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은 이십대의 나이에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불안의 존재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을 너무 빠른 시간 내에 해소하고자 하는 조급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시의 합격은 사회적 승인, 직장의 결정, 경제적 자립, 군입대, 심지어 결혼과도 같은 많은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것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서울대 진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주문을 외웠던 많은 학생들이, 이번에는 고시합격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같은 자기 최면을 걸며 총무처에 1만원짜리 인지를 내미는 것이 아닐까. 남보다 잘하는 장기라면 '시험보기'라고 자부하는 우리 학생들이 말이다.

불안이야말로 성장의 참된 친구이다.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서 꾸준히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바로 젊은이의 의무이자 특권이며, 많은 성취들이 그러한 불안을 동인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과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대책없는 나태가 아니면 "어떤 건지 시험이나 한번 치러보지, 뭐."하는 안이함으로 젊은 날의 성장통을 국소마취하려는 조급함을 자주 본다. 어떠한 막막함도 황금처럼 소중한 학창시절의 해이와 나태에 대한 변명의 구실이 될 수 없으며, 자신에 대한 치열한 뒤돌아봄 없이 성급하게 고시에 함몰하는 것은 그대에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무책임한 유기이다.

늦은 가을이 되어야 가장 풍성한 과일을 수확할 수 있듯이, 우리 인생의 열매를 거둘 시기는 아직 멀리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 학생들이 다시 새겼으면 좋겠다. 가슴 떨리는 불안을 연료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준비하며 남은 대학생활의 하루하루를 밝혀 나갔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고, 그대들의 자아를 실현하는 길이 법조인이나 공무원만이 아닐 터인즉.



대학신문 1998년 4월 6일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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