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사는 얘기

벌초

by 진환 posted Sep 21, 2009

해마다 벌초를 할 때 즈음이면, 우리 가족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거리가 생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들'이면 온당 추석을 즈음하여 벌초를 한다...만...
나는 어찌어찌하다보니 나이 서른 먹도록 여태 벌초와는 참으로 낯선 사이다.

벌초를 할 만한 체력을 갖추게 된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창 공부를 해야했었고,
대학 시절에는 경주가 서울에서 너무 멀다는 부모님의 만류로 벌초 멤버에서 제외되었고,
그러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자연스레 벌초와는 관련이 먼 무책임한 아들이 되어버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형은 사촌형과 함께 벌초를 다녀왔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아버지는 자식들 손에 벌초를 마냥 맡겨둘 순 없으시다며
이제 아파트 계단도 오르내리기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를 끌고서(!) 산을 다녀오셨다.

그래도 해마다 옥신각신 다투던 형이랑 아버지가 가면 안되네, 힘드시네 별다른 부딪힘없이,
형이 "그러세요.. 마음이 편하시다면 먼저 다녀오세요.." 하고 쉽게 보내드렸다보다.

2003년에 썼던 일기를 다시 읽으니 감회도 새롭고,
7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한거 하나 없다는 생각도 들고.

형한테 미안함으로 기름값이나 하라며 몇 만원을 보냈는데,
아버지는 그것도 별로 탐탁지 않으셨던지 그날 저녁 전화를 주셔서는

"싱거운 짓들 하고 있어.."

하고 외마디 핀잔을 주신다.

그래도 그래야 제 마음이 좀 편할거 같은데 어쩌겠어요~
오늘따라 아버지가 더 보고 싶네...

200907.jpg

090717 @ 제주도    

 

                           

** 2003.8.25. 일기

그러고보니 나, 참 포시랍게(?) 컸다.
나이 스물넷 먹도록 벌초 한번 다녀오지 않았다.

여태컷 포시랍게컸다란 말이 너무 싫었다.
그런말을 들을 때면 '사실이 아니야'라고 부정하곤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이다'라고 인정한다.
'근거없는 자신감' 때문이다.

어쨌거나 난생 첨으로 벌초를 간다.
이번 주말에.

아버님은 올해도 여전히 혼자 가시겠다 고집이시다.
'우리 엄마 묘는 내가 힘 닿는데 까지는 내가 해야지'
아버님 말씀이시다.

아버지 눈에서 '우수'를 느낄 때가 가끔있다.
'엄마' 얘기를 하실 때와 '동생' 얘기를 하실 때다.

어머니 말씀처럼 우리 아버지만큼 마음여리고 정이 많은 사람 없는 것 같다.
나이 예순을 바라보시면서도 '엄마'라 부르신다.
그 만큼 그 시절 아버지의 '엄마'가 그리우신 것일게다.

'동생'을 바닷가에 잃은 슬픔과 그리움.
아버지 평생에서 가장 슬프고 힘든 기억이리라.

형님과 난 작년에도 그랬지만
이번 벌초는 저희가 꼭 다녀오겠노라고 고집중이다.
올해는 아버님의 고집이 한풀 꺽이셨는지
'함께 다녀오자'는 입장이시다.

참으로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버지 연세를 생각할 때,
그 많은, 그리고 산 속 깊숙히 위치한 묘를 혼자 벌초하시는건 아무래도 무리다.

이번주에 다녀올 벌초를 앞두고 이래저래 많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아버지랑 형님이랑 삼부자가 다녀오는 벌초 길인만큼,
왠지모를 뿌듯함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릴 세사람이었음에도
이렇게 세 사람이 어울리는 처음 기회인지도. (철들고나서)
아버지 주름이 하나라도 더 늘기전에,
20대의 나보다 한 발짝이라도 먼저 산을 오르실 수 있는 기력이 있으실 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오고 싶다.

?
  • ?
    희성 2009.09.23 16:57
    너 아부지랑 똑같이 생겼어 ㅋㅋㅋ  잘 지내지? ㅎ
  • ?
    진환 2009.09.25 19:16

    아부지가 좀 더 잘생기셨어 ㅋㅋㅋ
    잘 지내지용~~~ 콩콩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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