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다나른 읽을 거리

2PM 재범 탈퇴, 나는 공포를 느낀다

by 진환 posted Sep 09, 2009

[기고] 우리는 진정 '애국주의 아이돌'을 원하는가?


최근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이돌 그룹 2PM의 리더 '재범'(박재범)이 2005년 미국의 사이트 '마이스페이스'에 한국을 비하하는 글을 남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누리꾼과 미디어의 뭇매를 맞다 결국 2PM을 탈퇴하고 말았다.

인터넷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순간 나는 이 친구가 도대체 어떤 심각한 발언을 했기에 자기 목숨과도 같은 팀에서 탈퇴했을까 궁금했다.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그가 문제가 될 법한 발언을 한 것은 "한국인은 정상이 아니다. 내가 하는 저질 랩을 잘한다고 칭찬한다. 정말 멍청하다",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허상이었다"는 정도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이 발언이 마치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어글리 코리아"로 근거 없이 매도하듯이 모국의 지적 수준을 비하하는 발언처럼 들릴지는 모르겠다. 철없는 교포 출신의 연습생이 아무 생각 없이 한 말로 책임이 있다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따져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토로한 글이며, 자신의 음악적 견해나 연습생으로서 느낀 심리적인 불안 상태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그가 직접 올린 공식 사과문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의 발언은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로서 본토 한국의 문화에 대한 부적응, 그리고 뮤지션으로서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연습생으로 활동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했던 발언을 놓고 4년이 지난 후에 누리꾼의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이토록 시끄럽고, 급기야는 당사자가 그룹에서 탈퇴하는 상황을 접하면서 한국 사회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신애국주의' 담론의 공포를 느낀다.

한국에서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애국주의적 요청은 스포츠 스타만큼이나 강렬하다. 과거 가수 유승준이 군 입대를 회피하기 위해 포기했던 미국 시민권을 다시 취득했다 결국 공항에서 강제 출국당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연예인들은 대중들의 열광적인 사랑에 걸맞는 애국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설령 자신의 소신이라 해도 한국, 한국인을 비난하거나, 군 입대를 회피하거나, 국가의 주요 이벤트에 불참하는 일이 발생하면 바로 매국노로 매도당한다.

특히 한류의 첨병 아이돌 스타들에게 국가나 시민들이 원하는 국위선양의 기대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애국심은 한류 아이돌 스타일의 "아시아 정복"을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의 성공사례로 놓아두질 않는다. 미디어는 국위를 선양한 한류 아이돌, 대한민국의 건아 아이돌 스타, 아시아를 깜짝 놀라게 한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 등의 수식을 쓰면서 이들의 활동에 애국적 기호들을 쏟아 붓는다. 원더걸스의 성공적인 미국 진출, 보아와 동방신기 일본 활약상, NRG의 중국 성공기를 보도하는 연예 정보 프로그램의 인터뷰들도 이들의 입에서 한국의 위대함을 표현하길 내심 원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아이돌 스타들의 정체성은 탈국적화되어 있다. 상당수 멤버들이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른바 '교포'들이고,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적 스타일도 글로벌한 주류 팝음악을 지향하고 있어 탈국적화되어 있다. 이들의 신체와 음악적 스타일이 탈국적화되어 있는데, 이들에게 과도하게 애국심을 요청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난센스다. 한국의 아이돌 문화와 음악은 이미 한국이라는 특정한 국가의 정체성을 떠나 있다. 물론 교포로서, 한국어로 노래 부르는 뮤지션이자, 한국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엔터테이너로서 모국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더 각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애정은 자발적이어야 하지 강요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재범의 한국 비하 발언과 2PM 탈퇴 사건을 보면서 한국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과도한 애국주의가 미디어와 포털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무차별로 유포되고 있음을 절감한다. 누리꾼들의 개인적 의견들이 모아져 미디어 포탈에 전해지면 그 순간 대중들의 애국주의 담론은 우리사회의 공적인 담론이 되어 버린다. 사실 애국주의나 민족주의로부터 가장 자유롭다고 볼 수 있는 연예계조차도 애국주의의 시선에서 한발 짝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보면서 이성으로부터 이탈한 대중의 애국주의의 힘, 미디어 담론의 힘을 목도한다.

1990년대 중반 영국 축구의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렸던 엘런 시어러가 축구 인생의 황혼기에 2002년 한일월드컵 잉글랜드 대표로 뛰어달라는 영국축구협회의 요청을 거절한 적이 있었다. 국가대표 발탁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해 오래전부터 대회 기간에 가족과의 여행 계획을 잡아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이유가 국가대표로 굳이 뛰고 싶지 않은 변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대표팀을 고사했고, 협회도 더 이상의 요청은 하지 않았다. 만일 한국의 어떤 선수가 대한축구협회의 요청을 이런 식으로 거절했으면 아마도 그 선수는 한국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국가대표 차출을 놓고 프로구단과 축구협회가 벌이는 신경전도 결국 따지고 보면 애국주의 논쟁이다.

고난의 시절을 경험한 한국에서 애국주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를 경험한 유럽의 국가들과 다르게 독특한 의미를 갖는 것은 사실이다. 국가가 절박한 위험에 빠져 있던 때가 어디 한 두 번이었겠는가? 그럼에도 국가의 시민적 정체성이 아직 분명하지 않은 10대 아이돌 스타나 개인의 승리와 행복도 중요한 스포츠인들에게 대중들과 미디어가 너무 지나치게 애국심을 기대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문화 다양성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2PM이나 재범 군을 개인적으로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내용의 시급함이나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다르게 "제2의 유승준 사건"으로 번진 것 같아 안타깝다. 미디어의 상업적 담론으로부터 자유롭고, 한국의 문화 현실의 유연성과 글로벌한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이번 사태를 좀 더 폭넓고 지혜롭게 읽어야 할 때가 아닐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08150621&section=04
?
  • ?
    진환 2009.09.09 08:37
    공감 100배 기고문이라 특별히 스크랩!!

Board Pagination Prev 1 ... 443 444 445 446 447 448 449 450 451 452 ... 457 Next
/ 457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